Friday, September 25, 2009

[오 이대나온 요자]

완전 멋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요~


오 근데

리쌍의 광대랑 완전 비슷







마음에 드는 한팀분 들

써먹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 기사

日 ‘친구 렌털’ 호황


‘일본은 외롭다.’
요즘 일본에서는 결혼식 들러리에서부터 친구, 애인, 심지어 배우자까지 돈 주고 빌리는 ‘친구 대여’ 사업이 호황이다. 일본의 친구 대여업체는 8년 전 5곳에서 최근 2배나 증가했고 가장 유명한 회사에는 1000여명의 ‘대역’이 등록돼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재치 있는 말솜씨로 결혼식 때마다 신랑 들러리로 인기 높은 류이치 이치노카와(44)는 ‘전문 대역’이다. 결혼식 몇분 전 목을 가다듬으며 피로연 사회를 준비하는 그는 사실 하객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보다 이날 탄생하는 부부에 대해 조금 더 알 뿐이다. 장난감 제조업자로 일하다 3년 6개월 전부터 대역으로 활동하는 그는 붙임성 있는 성격 덕분에 남녀 불문,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 30여명에게 고용돼 있다. 이번 주말에도 12살 소년과 그 여동생의 학교체육대회에 참석해 ‘삼촌’ 역을 해낼 참이다. 그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활동상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 와야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소년의 아빠, 선 보러 나선 여성의 부모 노릇도 하고 있다.

신문은 이런 ‘가짜 친구의 증가’가 일본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개인적, 직업적 문제를 남들 앞에 보여주길 꺼려하는 일본인들의 고질적인 문화적 반감이 맞물린 결과라고 풀이했다. 늘 바뀌는 역할에 맞춰 예상 답변을 준비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류이치는 “3년간 감기가 떨어진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또 늘 다른 사람의 남편이 돼야 하기 때문에 부인에게도 자신의 일을 비밀에 부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을 돕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기쁘다.”며 빙긋 웃었다.

[대학가요제]

1. 몇년째 대학가요제를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어쩌다 보니 보게 되었다

대학가요제하면 나는 추석을 떠올린다
전을 부치는 기름기 도는 냄새가 나고
타타다닥 칼질 소리가 들리고
부엌과 티비를 왔다갔다 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팔남매 장남의 아내이신 우리 어머니는
추석때만 되면 음식 장만과 청소로 고단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식구많은 집이 좋으셨다는
나의 착한 엄마는 힘이 든지도 모르게
명절 준비를 하셨다

나와 내 여동생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사실, 내 동생이 더 많이 도와 드렸던 것 같다

명절때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이 싫었다
잘하게 되는 것도 싫고, 잘하게 되어서 해야만 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슈퍼마켓 심부름을 시켜달라 하고
눈치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작은엄마들을 보며

상이 차려지자 마자 난
연신 엄마 엄마 이제 그만하고 와서 식사하세요
외쳐 댔었다



장남의 장녀로
남자들은 집에 누워 아무 일도 안하고
그저 받아먹고 여자들은 뼈빠지게 일하고
청소까지 해야하는 그 현상을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여자라서
해야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반항심이 있었고
최대한 "안"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저 여자이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께서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명절을 챙기신 건 아닌 것 같다

식구
괴물영화가 생각나는데,,,, 같이 밥먹는 것.
식구들끼리 같이 밥을 먹고 어울리는 것
정을 나누고 웃고 떠들고
그 자체를 보람있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피는 내게도 남아 있나 보다
여기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알 것 같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시부모님과 아가씨
우리 부모님과 나의 동생

가능하다면 아가씨의 남편 그리고 나의 동생의 남편
그리고 나의 아이들, 그리고 동생들의 아이들
다같이 명절을 세는 상상을 하고
그러한 복을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2. 장기하의 탈춤
싸이도 나왔지만, 나는 장기하의 퍼포먼스가 더 좋았다
탈춤을 부를 때 왜 나는 마음이 먹먹해 졌을까

웃는 모습의 탈을 쓴채 흥겨운 듯 춤을 춰야만했던
할말이 많아도 할 수 없었던 칠팔십년대 청년들의 모습이,

지금 대학생들의 모습과 겹쳐진 것은 나만 그런 걸까?

내가 대학생이 처음 된 것은 1999년도였다
정부에 대한 데모는 축소되고, 그래봤자 대들 만한 곳은 학교이고
양심수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졌던 해였던 것 같다. (내가 느낀 대학은)
길거리에 펼쳐진 대자보에는
팝신년대 데모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그려내기 일수였고
바보같은 민중중 한 사람인 나는,
별 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너무 애중간하게
데모할만한 대상이 어그러진 느낌이었고
현실적인 문제들, 그러니까 취업에 관한, 학비에 관한 문제들 사이에
애중간하게 놓여진 학번이 99학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느낀 대학생들은
불쌍하다

너무빨리 어른이 되어버려야 하는 그들이 불쌍하다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인데
취업이나 학비에 매달려 애어른이 되버린
수많은 그 또래들이 참 안된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엠비정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나(알고 싶지도 않고)
압박이 장난이 아니라고들 한다
간혹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정부가 국민을 너무 컨트롤하려한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꼭 팔십년대 정부를 떠오르게 하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탈춤노래를 부른 장기하는 가면위에 검은 눈물을 그렸다
가면을 벗은 장기하의 얼굴에도 검은 눈물이 그려져 있었다

마음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