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닷컴] (글=
픽사를 포함한 디즈니와 드림웍스가 힘 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폭스와 워너가 맹렬히 추격하는 형국이었던 디지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후발주자 소니는 ‘서핑 업’이나 ‘부그와 엘리엇’ 같은 평범한 작품들을 늘어놓은 뒤 드디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으로 제대로 경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최근 디지털 애니메이션 분야 곳곳의 주목할 만한 성과들은 뛰어난 선두 주자가 경쟁자들까지도 훌륭하게 단련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은 무척이나 매끄럽고 능숙한 애니메이션이다. 내내 가속페달을 밟으면서도 시종 동력을 잃지 않는 이 작품은 한바탕 휘몰아치는 대목에서조차 익살스럽게 쉬어가는 쇼트를 능란하게 넣을 정도로 완급조절 능력도 뛰어나다. 작은 체리 하나 때문에 거대한 음식의 산이 일거에 무너져내려 마을을 덮치는 장면이나, 정어리 한 마리가 고비를 계속 넘긴 끝에 간신히 살았다고 환호하는 순간 갈매기가 채가는 장면처럼 신(scene)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의 유머러스한 리듬 감각도 좋다.
축복이 재앙으로 바뀌면서 ‘음식 재난영화’가 되는 이 작품은 극중 상황이 최근 개봉한 영화 ‘더 로드’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듯 하다. 햄버거 비와 도넛 우박에서 스파게티 폭풍까지, 수많은 음식들이 위에서 떨어지거나 앞으로 밀려오는 설정이 많기에 3-D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입체감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감각적으로 인상적인 장면도 많아서, 엄청난 양의 치즈버거들이 보라색 구름을 뚫고 처음 쏟아지는 부분은 색감과 운동감이 압도적이다. 두 남녀가 반투명 젤리로 만든 성에서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는 대목은 촉감과 양감이 탄성을 자아낸다. 아이스크림 눈이 색색으로 내린 아침의 눈싸움처럼 서정적인 풍경도 있다. 가족 멜로 코미디 어드벤처 액션 등의 장르적 요소를 뒤섞어 모두 충족시키는 화법은 흡사 관객들을 푸짐한 뷔페 식당으로 끌어들이는 듯 하다.
서른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원작 동화를 성공적으로 각색해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기본적으로 기발하고 신선한 스토리 라인에 실팍한 살을 입힌 이야기는 부자(父子)간의 따뜻한 관계회복기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패자부활전으로도 제대로 기능한다. 탐욕이 낳은 엄청난 사태 앞에서 인물들이 저마다 삶의 교훈을 깨닫게 되는 결말도 진부함이 적다. (다만 이 도덕적 우화에서 메시지에 대한 조급증과 감동에 대한 강박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소니는 아직 픽사가 아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의 연출자는 이 작품으로 데뷔하게 된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크레딧에서는 영화의 주인에 대해 일반적인 경우처럼 감독 이름을 넣는 대신, ‘많은 사람들’(A film by a lot of people)이라고 표기한다. 거기에 담긴 것은 한두 사람의 예외적인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모여 영화 한 편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작은 감동이다.
이동진 이동진닷컴 대표 lifeisntcool@naver.com
'이동진의 부메랑인터뷰', '필름 속을 걷다', '이동진의 시네마레터' 등 출간.
KBS FM <유희열의 라디 오 천국> '이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쿡TV '무비스 토커',
한국영상자료원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 보는 다시보기' 등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