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5, 2009

[대학가요제]

1. 몇년째 대학가요제를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어쩌다 보니 보게 되었다

대학가요제하면 나는 추석을 떠올린다
전을 부치는 기름기 도는 냄새가 나고
타타다닥 칼질 소리가 들리고
부엌과 티비를 왔다갔다 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팔남매 장남의 아내이신 우리 어머니는
추석때만 되면 음식 장만과 청소로 고단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식구많은 집이 좋으셨다는
나의 착한 엄마는 힘이 든지도 모르게
명절 준비를 하셨다

나와 내 여동생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사실, 내 동생이 더 많이 도와 드렸던 것 같다

명절때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이 싫었다
잘하게 되는 것도 싫고, 잘하게 되어서 해야만 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슈퍼마켓 심부름을 시켜달라 하고
눈치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작은엄마들을 보며

상이 차려지자 마자 난
연신 엄마 엄마 이제 그만하고 와서 식사하세요
외쳐 댔었다



장남의 장녀로
남자들은 집에 누워 아무 일도 안하고
그저 받아먹고 여자들은 뼈빠지게 일하고
청소까지 해야하는 그 현상을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여자라서
해야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반항심이 있었고
최대한 "안"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저 여자이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께서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명절을 챙기신 건 아닌 것 같다

식구
괴물영화가 생각나는데,,,, 같이 밥먹는 것.
식구들끼리 같이 밥을 먹고 어울리는 것
정을 나누고 웃고 떠들고
그 자체를 보람있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피는 내게도 남아 있나 보다
여기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알 것 같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시부모님과 아가씨
우리 부모님과 나의 동생

가능하다면 아가씨의 남편 그리고 나의 동생의 남편
그리고 나의 아이들, 그리고 동생들의 아이들
다같이 명절을 세는 상상을 하고
그러한 복을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2. 장기하의 탈춤
싸이도 나왔지만, 나는 장기하의 퍼포먼스가 더 좋았다
탈춤을 부를 때 왜 나는 마음이 먹먹해 졌을까

웃는 모습의 탈을 쓴채 흥겨운 듯 춤을 춰야만했던
할말이 많아도 할 수 없었던 칠팔십년대 청년들의 모습이,

지금 대학생들의 모습과 겹쳐진 것은 나만 그런 걸까?

내가 대학생이 처음 된 것은 1999년도였다
정부에 대한 데모는 축소되고, 그래봤자 대들 만한 곳은 학교이고
양심수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졌던 해였던 것 같다. (내가 느낀 대학은)
길거리에 펼쳐진 대자보에는
팝신년대 데모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그려내기 일수였고
바보같은 민중중 한 사람인 나는,
별 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너무 애중간하게
데모할만한 대상이 어그러진 느낌이었고
현실적인 문제들, 그러니까 취업에 관한, 학비에 관한 문제들 사이에
애중간하게 놓여진 학번이 99학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느낀 대학생들은
불쌍하다

너무빨리 어른이 되어버려야 하는 그들이 불쌍하다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인데
취업이나 학비에 매달려 애어른이 되버린
수많은 그 또래들이 참 안된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엠비정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나(알고 싶지도 않고)
압박이 장난이 아니라고들 한다
간혹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정부가 국민을 너무 컨트롤하려한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꼭 팔십년대 정부를 떠오르게 하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탈춤노래를 부른 장기하는 가면위에 검은 눈물을 그렸다
가면을 벗은 장기하의 얼굴에도 검은 눈물이 그려져 있었다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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